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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이태양 2524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구 한판 승!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꾼 동양의 축구




2002 월드컵 4강 신화, 그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의 업적! 대한민국 축구는 박지성,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하며, 매번 발전을 거듭해 세계 무대에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축구는 본래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한 스포츠지만, 동아시아에서도 '축국'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스포츠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 ‘동양의 축구’가 우리나라 역사 자체를 바꿨다는 사실, 믿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근대 축구는 영국에서 전래되었으며, 한국 축구의 시작은 제물포에 정박한 영국 군함이 남기고 간 축구공을 차는 것에서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의 본질은 이미 천 년 전 ‘축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과 김춘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625년경 김유신과 김춘추는 축국 경기를 벌였다. 격렬한 경기 속에서, 김유신은 자신보다 9살 어린 김춘추를 상대로 고전하던 중 '유니폼 잡아채기'라는 치졸한 전략을 사용해 김춘추의 옷을 찢어버렸다. 그 순간을 단순한 실수로 넘긴 김유신은 누이동생 문희에게 옷 수선을 맡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김춘추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누이의 방에 밀어넣어 버린다. 이후의 일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신의 철저한 계략 하에 김춘추와 문희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그 결실이 바로 후에 삼국통일이란 업적을 이룩해낸 문무왕 김법민이다.


그 날의 경기가 아니었다면,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축국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바꾼 셈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축구는 영국에서 전해진 스포츠가 맞지만, 이미 천년도 전부터 ‘축국’이라는 형태로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즐긴 축국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통일신라는 고려와 조선을 넘어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졌다. 이렇듯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현재 월드컵과 올림픽을 통해 외교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고양국제고 1학년 심정민 (241613@ggg.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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